사는게 귀찮아요~

영찬이를 처음 만난 것은 2개월 전이었다.
하얀 피부에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여느 중산층 가정의 청소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영찬이는 사는게 너무 귀찮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귀찮고 세수하는 것도 귀찮고 밥 먹는 것도 귀찮단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하여 취업을 준비중인 영찬이는
‘귀찮이즘’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

영찬이는 4살 때 부모가 이혼했으며, 이후 알코올중독자인 할아버지와 정신 지체자인 고모와 한집에서 자랐다고 한다.남매 중에 누나는 엄마를 따라 집을 나갔고 지금까지 서로 거처를 모른단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심한 왕따와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적도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중3때 발병한 간질증상으로 인해 고등학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퇴하고 말았다.
현재 영찬이는 재혼한 아버지, 새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세계 3대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에 의하면 인간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매우 취약한 존재로 태어나며, 생후 4~5년간 부모의 극진한 보호와 사랑에 의해 혼자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기가 인성개발의 핵심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영찬이는 이 중요한 시기에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영찬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 무섭고 우울해서 무력한 존재인 어린아이가 생존하기에 여간 벅찬 곳이 아니었다.무력한 존재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에는 관심 끌기와 과제로부터의 도피가 있다.

영찬이가 처음 만난 코치에게 지나치게 상냥하게 웃으면서 반겼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영찬이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어릴 때 가장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고 만약 네가 원하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를 물었다.

영찬이는 부모가 험한 말투로 서로 싸우는 장면을 바꾸고 싶어 했다.
또한 알코올중독자인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남매에게 큰 소리로 혼을 내는 장면도 바꾸고 싶어 했다.
바뀐 장면에서 부모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곁에 있는 영찬이를 발견하고는 웃으면서 번갈아 무릎에 앉히고 있었다.
또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았으며 놀고 있는 남매를 발견하고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장면을 떠올리면서 영찬이는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 장면에서 영찬이는 더 이상 무섭고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고 편안하고 행복한 존재로서 자아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영찬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Self Esteem)의 회복이다.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무의식 속에 깔려있는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자존감이 있는 개인은 인생의 과제로부터 더 이상 도피하지 않는다.

  1. 08. 02

BCI 대표 김두연